2018 G.O. MILAL RUN 참가 후기 ‘자랑스런 내 영웅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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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순 (목사, 애보츠포드 주님의교회)

Aug. 1, 2018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 삼아 얘기하는 내 영웅담이 있다. 금요일 저녁, 딸아이에게 다음 날인 토요일 버나비지역 날씨를 물었다.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꽤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걱정이 앞섰다. 야외행사가 성공리에 진행되고 마치기 위해서는 좋은 날씨가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창밖 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이번만은 일기 예보가 적중하지 않았으면...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던 그 토요일, 4월 28일은 G.O. MILAL RUN 2018 이 있던 날이다. 일종의 자선 달리기행사였다. 주최측에서는 아마도 며칠 전, 아니 몇 달 전부터 행사 전반의 준비와 더불어 봄볕이 내리는 쾌청한 날씨를 기원했을 것이다. 물론 비가 오던지 해가 나던지 상관없는 행사라는 광고를 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었으리라.


행사 당일, 우리 교회의 몇몇 교인들과 행사장인 스완가드 운동장을 찾았다. 가끔은 못 맞추던 일기예보도 그 날은 적중했다. 제법 내리는 비가 방해꾼처럼 몹시 짓궃어 보였다. 그러나 행사장인 넓은 운동장에 들어서자 오히려 내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우중충한 우천의 분위기를 날려버릴 만한 떠들썩거림이 성능 좋은 스피커를 통해 내 귀에 들려 왔고, 무대를 중심으로 모여있던 참가자들과 흩어져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모여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축제에 걸맞는 표정이었다.


내 영웅담은 이렇다. 어이 없어서 피식 비웃을 준비를 해도 좋다. 10여년 전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애보츠포드(Abbotsford)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자선달리기에 참여했다. 10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기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마라톤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그대로 따라 했다. 처음에 뛰다가 걷고, 또 뛰다가 걸으며 1Km, 그리고 2Km, 그 다음 5Km, 그리고 좀 더... 그러다가 약 6개월 만에 10Km에 도전을 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내 영웅담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누구를 만나든 10Km 달리기 얘기를 꺼내며, 하프마라톤을 이룰 것이고, 풀마라톤도 꿈꿀 수 있지 않겠냐며 큰 소리를 쳤다. 그후 달리기를 내 취미 정도로 생각하며 꾸준히 달렸다. 물론 쉬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달렸다. 최근에는 꽤 오랫동안 공백이 생겼다. 유일한 내 영웅담을 얘기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되었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시간이 측정되는 첨단 전자장치가 부착된 번호표를 받았다. 숫자 5069가 크게 인쇄되어 있는 이 번호를 가슴에 달고 나니, 마음이 긴장되고, 자세가 좀더 새로워졌다. 한번 잘해보자는 그런 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스런 맘도 들었다. 아무리 짧은 거리를 달리는 것이지만 연습을 좀 했어야 했다. 서너 주 전, 이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신청을 한 후, 딱 두 번, 아주 오랜만에 달리기연습을 했다. 그런데 급히 한국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매형 되시는 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달리기행사 바로 전 날인 금요일, 10여일 만에 몸도 마음도 무거운 채 돌아왔다.


달려야 할 시간을 30여 분 앞두고 트랙을 오가며 벼락치기 연습을 했다. 당연히 몸이 가볍지 않았다. 이윽고 10Km 참가자들이 신호에 따라 출발했고, 내가 신청한 5Km를 달릴 백여 명의 주자들이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2.5Km를 달릴 분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우리의 출발을 응원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서로 아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친다. 청년들의 응원소리는 더욱 크다. 역시 젊음은 활기차며,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 아내는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응원을 대신하려는지 말 없이 연신 나를 향해 스마트폰을 치켜 들었다.


출발을 알리는 우렁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행성탐사를 떠나는 우주선과 똑같은 방법으로 스피커를 따라 나오는 구령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해주었다. 나는 긴장한 탓에 숫자 열 개를 거꾸로 세다가 잠시 헛갈려 더듬거리기도 했다. 마지막 숫자 제로가 되기 전에 출발하는 성급한 주자도 있었다. 아주 천천히 달릴 것을 작정한 터라, 걷는 걸음걸이보다는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응원소리를 들으며 곧 운동장을 빠져 나왔다. 내 앞과 뒤를 달리는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내 가쁜 숨소리만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정해진 코스는 센트럴공원으로 이어졌다. 먼저 작은 호수가 보였다. 낯익은 곳이다. 수년 전에 한국에서 왔던 친구 목사를 만나 나란히 걸으며 얘기를 나누었던 그 때는 그렇게 아늑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었는데, 똑같은 그 장소에서 나는 씩씩대며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낯선 곳으로 들어섰다. 빼곡히 서있는 키 큰 나무들 사이에 굽은 길이 이어지면서 내 앞을 달리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뒤쪽에 귀를 기울여봐도 아무 소리가 없다. 우거진 숲에 여전히 내리고 있던 비 때문인지 스산하기까지 했다. 나 혼자인가.. 아무도 없다. 순간 내 인생 길에서도 가끔 그렇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대로 놔두지 않으셨다. 찾아오셨다. 어루만져 주셨다. 이 적막한 숲 속에서 내 입술이 주님을 불렀다. 주여! 내 의지로 부른 게 아니라 저절로 나왔다. 달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달리기를 신청한 것조차 후회했다. 그냥 걸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아이고! 주여! 라고 불렀다. 몇 번을 숨가쁘게 그렇게 불렀다. 그러는 순간 하나님은 천사 두 명을 보내 주셨다. 뛰는 것을 포기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려는 나에게 천사들이 외쳤다. “힘내세요! 대단하시네요!” 길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사람의 가면을 쓴 천사들은 곳곳에서 힘겹게 달리는 내가 결코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


마침내 처음 출발했던 곳에 들어섰다. 결승점이다. 이번에는 천사들이 무더기로 모여있었다. 우레와 같은 소리로 나를 환영했다. 큰 격려와 엄청난 칭찬으로 들렸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 했던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다만 이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모르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 인생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몇 가지 숫자를 소개한다. 여러 숫자들이 나오기까지 수고한 G.O. MILAL RUN 2018 주최 측에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이 숫자들로 내 영웅담은 입술이 마르도록 계속 될 것이다. 번호표 5069, 5Km, 총 참가자 105명 중에 21등, 남자 참가자 48명 중에 14등, 50-59세 참가자 4명 중에 1등.

오늘도 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완주메달은 큰 칭찬이 되어 나를 춤 추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