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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길 함께 걷기

이상현 (목사, 밴쿠버밀알선교단 단장)

Apr 1, 2014

1880년 미국 보스턴 주립빈민보호소에 Anny라는 이름의 소녀가 들어왔다. Anny는 밥도 먹지 않았고, 도와주려고 몸에 손만 대어도 빽빽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Anny를 보호소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치하거나, 진정제를 투여했다. 부랑아를 비롯한 버림 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빈민보호소에서도 독방에 갇혀 지내는 사람은 어린 소녀로서는 Anny가 유일했다.


Laura 할머니는 은퇴한 간호사였다. 봉사할 자리를 찾아서 몇 번이고 그 보호소를 찾아갔던 Laura 할머니에게 Anny가 맡겨졌다. Laura는 차분하고 끈질기게 Anny를 만나주었다. “세상에 포기해도 되는 사람은 없어. 우리 서로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주기로 약속하지 않을래? 기다릴게, Anny.”

Anny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애를 쓰던 중에Laura는 Anny에게 얼마 전까지 남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남동생이 그곳에 오자마자 병으로 죽고 말았다는 사실도. 그와 함께, Anny가 앞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Anny는 이런저런 이유로 괴로워서 소리를 질렀던 것인데, 말로 표현 되지 않는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Anny에게 돌아온 건 고통스런 진통제주사와 냉대뿐이었던 것이다.


“사랑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내가 그렇게 널 사랑한다고, 세상을 꼭 눈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눈은 기껏해야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라고,” 따뜻하게 한결같이 다가오는 Laura 할머니에게 Anny는 드디어 마음을 열고, 자기의 무서웠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아빠는 술에 취해 항상 가족을 때렸다고, 그런 아빠보다 더 무서웠던 건 엄마가 죽는 것이었다고, 이제 남은 동생만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동생도 날 떠나버렸다고..” 눈물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Laura 할머니가 Anny에게 말했다. “난 지금 행복해서 울고 있어. 네가 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거든. 이제부터 나와 함께 기적을 만들어보지 않을래?”


Laura는 빈민보호소에서 Anny를 데리고 나와서 Perkins시각장애아학교에 입학시킨다. Anny가 점점 일반적인(정상적인) 소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던 어느 날 Laura가 죽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날 떠나가지 말라”고 절규하는 Anny에게 Laura할머니는 말한다. “영원히 네 옆에 있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기는 것뿐이라고, 네가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원한다면 기적이 너를 찾아올 것이라고, 사랑한다고..”


그 후, 비록 앞을 볼 순 없지만, Laura 할머니를 통해서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Anny는 반대로 눈을 뜨고 살지만 희망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던 안과의사를 우연히 만나 그를 그 절망에서 살려내고, Anny 자신은 그의 수술도움으로 시력을 찾게 된다. 그리고 6년 후, 최고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한 Anny는Laura 할머니가 가르쳐준 교훈,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과 이 세상에 포기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과, 그리고 기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사회로 나선다. 그리고 Anny가 만난 사람이 바로 Helen Keller(1880-1968)였다. Helen은 Anny를 만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최초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3중고를 이겨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 바로 “사랑과 기적을 믿고 그것을 전해주었을 때, 그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게 기적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서 살았던Ann Sullivan(1866-1936)의 이야기다.


이제 맞이하는 장애인의 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과 기적을 찾아 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만, 그 길은 많은 참음과, 함께 걷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그리고 주어진 조건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다른 삶, 그 기적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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