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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이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이상현 (목사, 밴쿠버밀알선교단 단장)

Apr 1, 2021

진화론의 논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자연선택)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정복함으로써 소위 역사가 발전해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힘을 가진 자만이 환경에 적응하였고, 그렇게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가정한다. 그 결과, 진화론적 세계관의 필연적인 우상은 힘(강함)이다. 어떤 힘이든 힘은 미덕이며, 약한 자는 루저다. 진화론적 세상은 힘을 가진 자와 힘을 숭상하는 자들의 놀이터다. 규율도, 법도 그들이 만들고, 그 시행도 힘을 가진 이들이 주도하고, 그 달콤함도 그들이 먹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믿는 이들이 힘이 약한 자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다.


사람은 강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 힘을 가져야 한다고 교육된다. 그래서, 작은 힘을 가진 자도 더 힘이 약한 이들에게 그 힘을 행사하며 산다. 이 크고작은 갑질은 자아상을 기준으로 보면, 자기를 높이고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하지만, 사실 똑바른 정신으로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더 높은 자리와 힘을 얻기 위해 분투하지만, 누구도 예외없이 언제나 낮은 자리에 있고 힘이 부족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1등이 가진 불안감은 2등, 3등이 가진 불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 이렇든저렇든 인간은 히스테리성 자기분열적 존재다.


같은 세상이 하나님 안에서는 다른 세상이 된다. 선악과 사건 이래로 저마다 하나님 노릇하려 드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품고 계신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써 다스리시고, 그분의 손길로 당신의 자녀들을 빚어가시는 현장이다. 이 하나님의 세상에서는 다른 원리가 작동한다. 그 원리는 이런 것이다.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 약함이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서로가 짐을 져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가진 약함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약함이 되고, 또 사랑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눈이 되어줄 수 있고, 귀가 되어줄 수 있고, 손발이 되어줄 수 있다. 이 하나님의 세상 안에서는 약함이 귀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섬김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약함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통로가 되기에 더욱 귀한 것으로 인식된다.


약함은 내가 도움을 받는 것일 뿐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유익하게 하며 그 몸을 세우는 일이 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는 몸이며, 이 몸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이라고 하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In Christ to be put into effect when the times will have reached their fullfilment - to bring all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together under One head, even Christ)는 전망을 말씀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함이 오히려 복이 된다.


하나님의 세상에서 - 이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진다 - 우리가 서로 짐을 질 때에, 우리는 나의 짐(약함)을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각자는 나의 약함이 채워질 뿐아니라 내가 완전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은 성장이다. 내 약함이 놀림당하지 않고, 공격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리고, 내 약함을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자유다. 내 약함을 부끄럽지 않게 내어놓을 수 있고 신세를 질 수 있는 것, 그건 성숙이다. 그런 자유와 성숙의 길을 걷는 이들은 다른 이의 약점을 그대로 받아주고 약함을 채울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진실한 사랑을 배워가고 사랑을 키워간다. 우리는 바울사도가 확신있게 쓴 대로,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Love never fails)는 걸 안다.


하나님의 세상 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내가 너의 그리고 네가 나의, 서로서로 짐을 져주는 사랑은 우리를 각자가 자기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간다. 우리는 모든 날들은 각각 그 날의 괴로움이 있고(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그 괴로움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 사는데 충분한 것임을 배우며 산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고 오늘을 살기를 배운다. 하늘 아버지께서 돌보아주신다는 걸 아는만큼 오늘은 충만한 오늘이 된다.


하나님의 세상에서 살도록 초대(구원) 받은 우리도 종종 길을 잃는다. 그때 우리는 약함의 은총을 상실한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걸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하나님의 사명자들이다. 그 메시지를 거꾸로 읽는 것은 우리의, 그리고 세상의 어리석음이다. 장애인을 가까이 해본 이들은 안다. 그들의 고통과 관계없이(장애의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의 약함이 보석과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의 약함이 도리어 우리를 살리고 새롭게 해준다. 우리는 그들의 약함에 함께 함으로써, 함께 완전해지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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