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성화는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press to zoom

press to zoom
1/1

이상현 (목사, 밴쿠버밀알선교단 단장)

Apr. 1, 2010

약 4년 여 전, 밴쿠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서 밀알사역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난 후에, 밀알 장애인 겨울캠프에 조장으로 참가한 일이 있었다. 150여 명이 넘는 장애인과 봉사자가 함께 한 그 캠프의 프로그램 중에는 눈썰매를 타는 순서도 있었다. 제법 추운 날씨였어도, 그 때 모든 참가자들이 정말로 즐거워하면서 눈썰매를 탔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형제를 비롯해서 여러 부류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을 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즐거워하고 행복해 한 사람은 중증복합장애를 가진 형제였다. 그 형제는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밥도 누워있는 상태에서 떠먹여주어야 했고, 또 정신적인 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바퀴가 달린 이동식 침대 위에 그 형제를 옮겨 태우고 눈썰매장까지 밀고 갔다. 눈썰매장에 도착해서는 그가 누워있는 침대를 들어 미리 준비해 둔 눈썰매 위에 붙들어 매었다. 그리고 그를 아래로 밀어 내려 보냈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눈썰매를 즐기고 있었다. 가눌 수 없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잘 부딪쳐지지 않는 손바닥을 마주 치면서 괴성 같은 소리를 질러대는 그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함박꽃 같은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에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우리 모두는 박수를 치면서 같이 환호하고 격려를 보냈다. 가장 힘든 형편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그에게서 나오는 기쁨을 보는 기쁨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형제를 포함하여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는 일이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복잡하고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혼자서 즐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른 행복을 주었다. 외모와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경솔한 일인가? 그 모든 가능성과 기쁨과 행복을 다 빼앗아버리는 일이 아닌가? 그 때 나는 배웠다. 어떤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봉사라는 것을,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밴쿠버에 와서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사역하면서 그 사실들을 하나씩 다시 확인하고 있다. 특별히 작년 12월에는 우리 사랑의 교실 학생들을 데리고 제1회 스노보드 캠프를 진행했었다. 여름철에 비해서 겨울철에는 겨울을 즐길 수 있는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상하고 광고까지 했지만, 막상 준비하면서는 걱정이 많았었다. ‘미끄러운 눈 위에서, 완만하고 가파른 경사에서 보드를 배우고 타는 일인데 다치면 어떡하나, 한 번 해보고 다음 날엔 안 한다고 안 오면 어떡하나, 집에 가서 힘들다고 짜증내면 어떡하나, 괜한 짓을 하겠다고 한 건 아닐까...’ 그렇지만,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막상 캠프를 진행했을 때 그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많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던지! “내일 또 와”, “또 올 거야”, “내년에도 스노보드 캠프 할 거냐” 묻고 다짐하는 우리 학생들을 보면서 이들은 할 수 없는 사람들(the disabled)이 아니라, 일반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the differently abled)인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고 성취하려고 할 때,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밴쿠버에서는 세계인의 관심 속에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던 올림픽에 이어 또 하나의 지구촌 축제인 동계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대회가 치뤄졌다. 장애인들이 일반인들에게 주는 것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큰 하나는 감동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예년처럼 불편한 신체조건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졌고, 끈기와 노력이 있다면 불가능할 것이 없음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대회였다. 동시에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이 속한 각국 정부와 시민들이 얼마나 이들과 함께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원하는 일이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회이기도 했다.


나는 이 대회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한다. 모든 장애인들이 인생이라고 하는 패럴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이제 금, 은, 동메달을 겨루는 대회가 끝나고 성화는 꺼졌다. 그러나 진정한 패럴림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우리 모든 장애인들의 진정한 인생의 패럴림픽을 돕고 응원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과 사회가 크고 작은 감동을 계속해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성화보다도 더 밝은 감동의 빛이 우리 마음과 사회를 환하게 비추어줄 것이다.


밀알이 한 일, 그리고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온30년 동안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올림픽 메달처럼 빛나고 가슴 훈훈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장애인들을 인생의 패럴림픽을 가슴을 펴고 달리게 하고, 저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밀알사역이야말로 어떤 성대한 대회보다 멋진 사역이다. 나는 밀알사역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나는 꿈을 꾼다. 모든 밀알 동역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꿈,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장애인들이 “고맙다”고, “당신 덕분에 내 삶의 경주를 잘 달려올 수 있었고, 하나님나라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었다”는 인사를 들으며 함께 기뻐하는 꿈, 이 큰 감동의 사역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꿈을 오늘도 가슴에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