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관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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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밀알 사랑의교실 윤관진 어머니

Mar. 2, 2012

우리 아이는 눈에 띄지 않는, 경미한 뇌성마비와 그로 인한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21살의 남자 아이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파서 간 응급실에서 요관 협착으로 인하여 콩팥에 결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날짜가 3개월 전에 잡혀있었지만 수술의 “수” 자도 아이 앞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미 3 년 전 턱 수술 때 아이가 너무나 무서워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수술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느꼈던 거의 패닉에 가까운 불안과 공포는 신경안정제를 여러 번 복용했어도 진정이 안 되었고, 스트렛처에 눕혀져 수술실로 실려 들어갈 때에도 벌떡 일어나서 복도가 떠나가도록 울며 무섭다고 소리치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그런 악몽 같은 경험을 또 하게 하나, 마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술하는 날까지 아이한테는 비밀로 했고, 병원에 가면서는 간단한 검사 정도 받는 것으로 알게 하였습니다. 미리 알면, 아는 순간부터 그 스트레스에 짓눌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아이의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특별히 가족과 함께 편안히 있도록 넓은 공간을 배려해준다는 것이 수술실 문 바로 앞에 있는 대기실이었습니다. 모든 병원 스탭들이 수 없이 그 문을 드나들 때마다, 아이는 자기 차례인 줄 알고 감았던 눈을 번쩍번쩍 뜨며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손등에 진정을 위하여 붙인 패치도, 먹는 약도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수술실까지 같이 들어가자고 내 손을 꼭 쥐고 놓지 않던 아이 손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한 시간쯤 지나면서부터는 이제는 빨리 해치우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장되고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이때 목사님의 전화벨이 울렸고, 아이는 그 긴장 속에서도 목사님과의 대화내용을 알고 싶어했고, 많은 위로를 받는 듯했습니다.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분의 봉사자 아줌마들이 와서 온갖 농담과 익살로 관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썼지만, 남 앞에서 항상 체면유지를 잘하던 아이가 수술실 문이 열리는 순간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수술실로 억지로 실려가는 아이를 보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수술실의 거대한 수술장비들을 보면서 또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집에 있는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니까, “아직도 안 끝났어? 수술실에서 나오면, 나왔다고 꼭 전화해줘. 나 굉장히 걱정돼.” 누나는 늘 동생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지만, 그래도 항상 동생을 걱정하는 그 마음은 신기할 정도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온 우리 딸이 정말 고맙고 예쁘기만 합니다.


간호사가 불러 회복실에 들어가니, 마취가 풀려가는 중인 아이는 어눌한 목소리로 “엄마 어디 있었어?” “여기가 어디야?”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고,”

“응?”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수고”

“누가?”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가”

“엄마가? 왜?”

“병원에서~ 수고했어”


나는 너무 놀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인데, 무의식 속에 엄마가

자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을 이 녀석이 안다는 말인가? 이 어른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니, 수술 받느라 자기가 수고했지, 내가 수고 했다고?’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나, 이런 아들한테... 아들이 화내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더 화내고 누르려 하고, 자기도 자기 스스로 조절이 안 돼 힘든 아이한테 나는 더 힘들다고, 왜 너는 그러냐 하며 얼마나 많은 말로 상처를 주었나…’ 나는 아들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아이는 이런 나의 잘못을 다 용서하는 듯했습니다. “그래, 이 순간 엄마는 행복하다. 너에게 받은 이 감동 잊지 않을 게” 나는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