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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밴쿠버밀알 편집부

Nov 1, 2012

“용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욱이는 여러 해 동안 우리 밴쿠버밀알 식구였다. 그러다가 올해 5월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용욱이가 자라면서 아빠를 많이 그리워하고, 용욱이 부모님 또한 가족이 같이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밀알 식구들은 ‘잘 되었다’고 축하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섭섭해하였다. 용욱이가 밀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밀알을 통해서 얼마나 그의 세계가 넓어졌으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용욱이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유붕자원방래 (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 (不亦樂乎)” –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논어, “학이” 편)


용욱이에게서 온 전화인 것을 알았을 때, 위 논어의 경구처럼 마음이 기뻤다. 처음에는 용욱이 엄마 목소리였다. 용욱이가 학교에 잘 적응했단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선생님과 도우미 친구들을 만났다고 했다. 선생님이 “용욱이가 반듯하고 또 자신감을 갖고 잘 한다”고 칭찬을 하신단다. 용욱이가 속해 있는 학급에는 용욱이와 비슷한 친구들이 8명이 있는데, 그 중에 5명을 벌써 친구로 사귀었다고 했다. 학교 방학을 하게 되니, 막막하고 마음 졸이며 염려했던 데서 놓여나고 여유도 좀 생기고 마음의 안정도 얻으면서 너무 고마워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용욱이를 바꾸자, 첫 마디가 “목사님, 보고 싶어요” 였다. 그리고 “’밀알 사람들’ 잘 있는지, 사랑의교실을 계속하는지, 난타교실을 지금도 하고 있는지”를 묻고, “LA camp를 잘 다녀왔는지, 놀이기구를 많이 탔는지"도 묻고, “공연은 했는지”도 묻고, “재혁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시진이 형한테서 전화가 왔다”고도 했다. 용욱이와 사랑의교실에서 “짝”이었던 시진이가 한국에 나가면서 용욱이네 전화번호를 물었었는데,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다음 주 수요일 12시에 예빈이 형까지 같이 만나기로 했다”고 자랑을 했다. 예빈이는 시진이 앞서서 용욱이와 “짝”을 하다가 한국으로 대학을 간 봉사자다. “와, 용욱이 좋겠다. 뭐 먹을 거냐?” 물었더니 “피자를 먹을” 거란다. 그리고, “예형이랑 민형이가 한국에 나온다고 들었다”며, “나오면 꼭 만나겠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인가? 더구나 보고 싶은 사람, 알아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어 꽃이 되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다림이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며, 축복 된 은총인가?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전화를 끊고 기쁜 마음이 가라앉을 때쯤 다른 밀알 친구 엄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목사님, 전에는 마켓에 가려면 집에서부터 아이를 단속했었어요.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조용히 하라’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알아봐 주고,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아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밀알에 봉사 했다’거나 ‘봉사하고 있다’거나, ‘점심식사를 준비해서 갔을 때 만났다’거나, ‘밀알의밤 공연 때 보았다’거나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굳이 이럴 필요가 없구나!’ 그때부터 저도 편안해지고, 우리 아이도 편안하게 되었어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밤이 깊어가고 날이 밝아오듯이 밀알의 날들도 쌓여갈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 하나가 떠오른다. “먼 길을 가려면,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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