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s to 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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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목사, 밴쿠버밀알선교단 단장)

Jun. 1, 2012

대니얼 고틀립이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s to Sam >라는 책이 있다. “샘”은 자폐 장애를 갖고 있는 그의 손자다. 샘은 채 두 살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자폐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하고, 반응도 없고, 화가 나면 머리를 바닥에 찧고, 말을 걸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는 자기를 보고 울었고, 딸을 보고 울었고, 손자를 보고 또 울었다. 그러다가 손자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을 편지로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한 통 두 통 쓴 편지가 4년 동안 32통이 됐다.


고틀립 씨는20대에 심리학 박사가 되었다. 공부하던 중에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일찍 결혼을 했다. 젊은 정신의학전문의로서 중독증세 분야에서 주가를 높여가고 있었다. 교외에 좋은 집을 샀고, 두 딸도 낳았다. 그러나 그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결혼 6주년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았다. 길고 긴 투병 끝에 암은 완치됐지만, 그 사이 부부관계는 금이 많이 갔다. 결혼 10주년을 맞았을 때, 그는 아내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아내에게 선물할 멋진 새 차를 찾으러 가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맞은편 차도를 달리던 화물트럭에서 커다란 타이어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그의 차 지붕을 덮쳤다. 한참 만에 잃었던 의식을 되찾은 그는 얼굴의 감각만 살아 있었고, 목뼈가 부러지고 경추가 끊어져서 전신마비가 되었다. 그때 나이가 33살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고틀립 씨는 자기의 인생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전신마비로 살고 싶지도 않았고,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죽고 싶기만 했다. 마취 기운이 조금씩 가시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조금도 돌릴 수가 없이 누워 있는 그의 등 뒤에서,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간호사에게 들었는데요, 혹시 심리치료 하시는 의사 선생님이세요?”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 여자는 속삭이듯 말했다. “한 남자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런데 그가 떠나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니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했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자살의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런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 겁이 났다.” 이런 얘기였다. 그녀는 바로 앞에서 자기 고통을 듣고 있는 사람의 끔찍한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고통이 전부였고, 오직 고통 받는 자신을 도와주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듣는 내내 깊은 연민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정작 자신의 고통을 잊고 있었던 거였다. 당시 그는 오로지 그녀의 고통에 집중했고, 그녀만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전신마비로도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의 고통에 집중하는 동안, 그 낮은 목소리에서 “당신은 여전히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날 밤 그녀와 그는 그렇게 서로를 살려냈다.


고틀립 씨는 이 이야기를 손자 샘에게 들려주면서, “우리의 연약함은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썼다. 그 열쇠는 나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도 열어줄 수 있는 열쇠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밀알이 하는 일도 말하자면, 이렇게 “말을 건네고 말을 듣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에, “너와 나” 사이에 “살려냄”과 “살아남”을 경험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밀알이 써나가고 있는 역사라는 생각이다.